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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에세이

자운영2 2009. 12. 2. 18:54

<바다의 기별>을 읽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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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기울어서, 마을과 강가를 어슬렁거리며 사람사는 구석들을 기웃거릴 때, 쓴 글과 읽은 글이 모두 무효임을 나는 안다. 이 환멸은 슬프지 않고 신바람 난다. 나는 요즘 실물(實物 )의 구체성과 사실성을 생각하고 있다. 실물만이 삶이고 실물만이 사랑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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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솔개나 헤엄치는 물고기는 늘 나를 주눅들게 한다. 말하지 않고, 몸으로 솟구치는 저 이물들의 삶은 얼마나 자족한 것인가. 아무래도 말은 몸보다 허술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말은 말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끝없이 주절거린다. 나는 그 허술함의 운명을 연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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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견딜수 없이 절망적이고 무의미하다는 현실과, 이 무의미한 삶을 무의미한채로 방치할 수 없는 생명의 운명이 원고지 위에서 마주 부딪치고 있습니다.말(言)은 현실이 아니라는 절망의 힘으로 다시 그 절망과 싸워 나가야 하는 것이 아마도 말의 운명인지요. 그래서 삶은, 말을 배반한 삶으로부터 가출하는 수많은 부랑아들을 길러내는 것인지요.
                                                                   (동인문학상 수상소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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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은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김훈 에세이'라고 나온 책을 읽은 날, 
그냥 푹,하고 주저앉았습니다 .